소망이 자면서 듣기 좋은 성경이야기

목숨 걸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 — 이란 청년의 이야기

마 10:32-33 · 성경과 트렌딩 이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 마 10:32-33

이야기 요약

목숨 걸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 — 이란 청년의 이야기

당신은 신앙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있으십니까? 직장을, 관계를, 혹은 편안함을. 잠깐 생각해보십시오. 지금부터 드릴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란의 어느 평범한 도시. 열일곱 살 소년 아리는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기도 시간마다 고개를 숙였고, 라마단이면 금식을 지켰습니다. 그것이 그가 알던 신이었고, 그가 알던 세상이었습니다.

목숨 걸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 — 이란 청년의 이야기

하지만 어느 날, 친구가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여줬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리는 처음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무언가가 그의 가슴 안에서 두드리고 있었거든요. 그는 성경을 몰래 구했습니다. 이란에서 성경을 소지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읽을수록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가 알던 신이 아니다.' 그 생각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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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지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이란에서 지하 교회란 말 그대로 숨어 있는 교회입니다. 보통 가정집에서 모이고, 창문을 꼭 닫은 채 목소리를 낮춰 찬송을 부릅니다. 아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이 머리 위로 흘러내릴 때, 그는 이것이 단순한 의식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 선택의 값이 얼마인지, 그 순간 그는 아직 다 셈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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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어머니가 알아챘습니다. 아리의 방에서 성경을 발견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울었습니다. '너 때문에 우리 가족이 다 위험해진다.' 이란에서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배교죄입니다. 법적으로 사형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흘 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집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아리는 그 침묵이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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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리는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모임에 계속 나갔지만, 핸드폰을 바꾸고 경로를 매번 달리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신앙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죠. 하지만 그가 기도하는 표정,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미 달라져 있었습니다.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 것들이 있거든요.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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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어느 저녁,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검은 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였습니다. 아리는 연행됐습니다. 심문실은 차가웠습니다. 심문관이 물었습니다. '예수를 버리겠느냐.' 아리의 손이 떨렸습니다. 그는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성경에서 읽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자는...' 이 문장을 어떻게 끝맺어야 하는지, 그 순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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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리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심문관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며칠 뒤, 아리는 석방됐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기적이라 부를 수도 있고, 행정 착오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는 알았습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세례받던 날, '이 선택의 값을 아직 다 셈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날 그 차가운 심문실에서, 그는 마침내 셈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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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가가 있었습니다. 이란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고향도. 아리는 먼 나라로 피신했습니다. 그곳이 한국이었습니다. 낯선 언어, 낯선 음식, 낯선 얼굴들.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불확실했죠. 그는 이따금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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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다시 예배당을 찾았습니다. 서울의 한 작은 교회였습니다. 언어는 달랐지만 찬송의 선율은 같았습니다.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아줬습니다. 성경은 이런 장면을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습니다. 나그네를 환대하라고. 어쩌면 아리가 먼 이국땅에서 찾아 들어온 그 예배당이, 오늘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교회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아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난민 심사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이미 완성됐습니다.

묵상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3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다.' 이 말씀은 초대교회 시대에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란의 한 열일곱 살 소년의 심문실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었습니다. 신앙고백의 본질은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 말씀의 힘입니다. 아까 그 질문, 기억하시나요? '당신은 신앙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있으십니까?' 누가복음 14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려 할 때 먼저 앉아 값을 계산하지 않겠느냐.' 신앙에는 값이 있습니다. 아리는 그것을 셈했습니다. 가족, 고향, 안전, 미래. 그 모든 것을 내놓고 예수님을 택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누가복음 9장 23절은 말합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순교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날마다의 선택 안에 이미 있습니다. 오늘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 속에서 — 우리는 매일 작은 심문 앞에 서 있습니다.

기도

주님, 아리의 심문실보다 훨씬 작은 일에도 흔들리는 우리를 용서하소서. 오늘 각자의 자리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용기를 주소서. 우리 손 닿는 곳에 나그네가 있다면, 그를 환대하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고난 가운데서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