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면서 듣기 좋은 성경이야기 창세기 25장, 28장, 37장, 사사기 6-8장 · 성경으로 읽는 세계사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 사사기 7:2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집에서 일어난 두 여인의 이야기를 따라갔습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았고, 이후 사라가 이삭을 낳았을 때, 두 모자는 광야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하갈에게 나타나 이스마엘의 이름을 직접 불러주셨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성장했습니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이 되었고, 어머니 하갈이 이집트에서 아내를 맞아주었습니다. 그 후손들이 아라비아 반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놀라운 정보를 하나 더 줍니다. 이스마엘이 낳은 아들이 한 명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5장을 보면, 이스마엘의 아들이 열두 명입니다. 느바욧, 게달, 앗브엘, 밉삼, 미스마,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둘, 나비스, 게드마. 성경은 이들이 '각각 부족을 이루어 열두 지파의 방백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나왔듯이, 이스마엘에게서도 열두 지파가 나온 겁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 — '이스마엘에게도 열두 지파 지도자들을 내고 큰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 —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25장은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장사 지냈다고 기록합니다. 형제는 여전히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쌍둥이 아들인 야곱과 에서가 자라면서, 이 두 집안은 다시 한번 얽힙니다.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의 축복까지 가로채자, 에서는 형제를 죽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야곱은 도망쳤고, 에서는 분을 삭히며 혼자 남았습니다. 그때 에서가 한 가지 결정을 내립니다.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에서는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 했다는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는 가나안 여인 말고, 나는 따로 아내를 맞겠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이었습니다. 성경은 에서가 가나안 여인이 아버지 이삭의 눈에 좋지 않음을 보고 이 결정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상의 동기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야곱이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갔다면, 에서는 그 약속 밖에서 다른 나라를 이루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돔이라 불리게 되는 에서의 후손들, 그리고 이스마엘의 후손들. 두 집안은 이렇게 혼인으로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피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몇 세대가 더 지납니다.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고, 그 중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채색옷을 입고 다니는 어린 동생, 꿈 이야기나 늘어놓는 그 아이를. 어느 날 형들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요셉이 혼자 들판으로 나오자, 형들은 그를 붙잡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죽이자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낙타 행렬이 나타났습니다. 창세기 37장 25절의 장면입니다. 형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이스마엘 사람들의 한 떼가 길르앗에서 오는지라. 그 낙타들에는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상인들이었습니다. 유다가 말했습니다. '동생을 죽여서 뭐하겠느냐, 차라리 저 상인들한테 팔자.' 요셉은 은 스무 개에 팔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같은 장면에서 이 상인들을 두 가지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스마엘 사람들, 그리고 미디안 사람들. 왜 그럴까요.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하갈의 아들이고,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은 뒤 맞이한 후처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두 집안 모두 아브라함의 씨였습니다. 이 상인들은 서로 혼인이나 연대로 묶인 아라비아 대상(隊商)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팔아넘긴 그 상인들이, 같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형제들이 형제를, 아브라함의 한 후손이 아브라함의 다른 후손에게, 요셉을 건넸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 아이러니한 순간을 통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은 결국 가족 전체를 살리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 위에 아브라함의 다른 후손들이 있었다는 사실, 그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요셉 이야기가 끝나고 수백 년이 흘렀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 모세의 인도로 탈출했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 들어섰을 때, 뜻밖의 적이 나타났습니다. 아말렉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아말렉은 아무 이유도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제 막 노예에서 풀려난 이 무리를, 더위에 지치고 목마른 이 사람들을. 뒤처진 연약한 자들을 먼저 쳤다고 신명기는 기록합니다. 비겁하고 잔인한 방식이었습니다. 아말렉은 누구였을까요. 창세기 36장을 보면,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입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와 첩 딤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기도 했으니, 에서 가문 전체가 이스마엘 가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증손자가 아브라함의 다른 증손자들을 공격한 겁니다. 그 이후로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끈질긴 원수가 됩니다. 광야에서, 사사 시대에, 다윗 시대에도 아말렉은 계속 등장합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말렉을 완전히 멸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각 왕과 좋은 것들을 남겨두었고, 결국 그 불순종으로 왕위를 잃습니다. 이 아말렉 진멸 명령은 오늘날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 민족을 완전히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이 명령을 오늘날 민족 간 갈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말렉에 대한 심판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악의적으로 공격한 것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었지, 특정 민족이나 종족 전체를 적대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의 특정 문구에 매달려 오늘의 갈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성경 전체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일입니다.
사사기로 가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한참 지난 시절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할 때마다 하나님은 외적을 통해 압박을 허락하셨고, 백성이 부르짖으면 사사를 세우시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그 가운데서도 사사기 6장부터 8장의 이야기는 특별합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칩니다. 미디안은 앞서 보았듯이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아들에게서 나온 민족입니다.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 넘겼던 그 상인 집단의 후신이죠. 그런데 이제 그들이 이스라엘의 땅에 쳐들어와 추수 때마다 곡식을 빼앗고 가축을 약탈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산에 굴을 파고 숨었습니다. 그만큼 압도적이었어요. 메뚜기 떼처럼 밀려드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짓밟은 지 칠 년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기드온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일하던 겁니다.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다.' 기드온의 반응은 솔직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얘기한 기적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민망할 정도로 솔직한 불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이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냈다.' 기드온이 물었습니다. '제 가족이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약하고, 저는 아버지 집에서 막내입니다.' 그 연약함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쓰셨습니다. 기드온은 군사를 모았습니다. 삼만 이천 명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많다.'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내라 하셨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많다 하셨습니다. 물 마시는 방식으로 가려 뽑았더니, 최종적으로 삼백 명이 남았습니다. 삼백 명으로 수십만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라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내게 자긍하여 나의 손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했다 할까 두렵다.' 연약하면 연약할수록,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이 자기를 의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삼백 명은 각각 나팔과 빈 항아리, 그리고 항아리 안에 횃불을 들었습니다. 한밤중에 적진 주위를 에워쌌습니다. 기드온의 신호와 함께 동시에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터지는 나팔 소리와 불빛. 미디안 진영은 혼비백산했습니다. 하나님이 혼란을 주셨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서로를 칼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삼백 명이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적이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싸운 것은 이스라엘의 후손들이었고, 무너진 것은 아브라함의 다른 후손들이었습니다. 한 아버지에게서 나온 자녀들이 수백 년 후 서로의 적이 되어 광야에서 칼을 뽑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단순히 이스라엘 편이셨을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미디안을 통해 이스라엘을 치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부르짖고 돌아왔을 때, 연약한 기드온과 삼백 명을 통해 회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어느 민족의 승리가 아니라, 당신의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따라온 이야기를 잠깐 정리해봅시다. 이스마엘에게서 열두 지파가 나왔습니다.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에서의 손자 아말렉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또 다른 아들의 후손으로, 요셉을 애굽에 팔았고 나중에 이스라엘의 땅을 칠 년간 짓밟았습니다. 이스마엘 상인과 미디안 상인은 같은 아브라함의 피를 공유했습니다. 한 아버지에게서 나온 씨앗들이 수백 년에 걸쳐 서로 얽혔습니다. 어떤 만남은 거래였고, 어떤 만남은 전쟁이었고, 어떤 만남은 혼인이었습니다. 이 얽힘 속에서 하나님은 한쪽만 일방적으로 편드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는 다른 후손들을 통해 징계하셨고,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는 놀라운 방식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기드온의 삼백 명 이야기에서 우리가 진짜 볼 것은 그 숫자가 아닙니다. 연약한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입니다. 기드온은 군대를 믿지 않았습니다. 삼백 명으로는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남은 것은 하나님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셨던 출발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 이야기는 이것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인간의 선택과 실수와 갈등이 쌓여도, 하나님은 그 안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십니다. 버려진 이스마엘도, 광야를 도망쳤던 야곱도,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도, 포도주 틀에 숨어 있던 기드온도, 하나님이 찾아오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하나님이 '약속 안의 사람들'만을 보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이스마엘도, 하갈도, 미디안 상인들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을 치는 데 쓰인 미디안 군대조차, 하나님이 허용하신 범위 안에서 움직였습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삼만 이천 명을 삼백 명으로 줄이신 하나님. 그 이유가 단순히 기적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내 힘으로 이겼다'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인간의 능력 밖으로 상황을 만드신 겁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비로소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기드온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상황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 실력으로, 내 자원으로, 내 관계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그 비어있는 자리가 하나님을 위한 공간이 됩니다. 기드온의 삼백 명이 이겼던 밤처럼, 나팔 소리와 항아리 하나로 벽이 무너지는 경험은 그 빈자리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들 이야기를 따라왔습니다. 한 가족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떻게 나뉘고 얽히고 충돌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 안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멈추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도 많은 것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제 능력, 제 관계, 제 계획들. 그것들이 하나씩 줄어들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기드온의 삼백 명처럼, 남은 것이 하나님밖에 없을 때 그것이 가장 강한 자리라는 것을 믿게 해주세요. 오늘도 저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