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 자면서 듣기 좋은 성경이야기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열왕기상 10장, 이사야 45장, 다니엘 2장 · 성경으로 읽는 세계사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자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 이사야 45:1

이야기 요약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지난 두 시간에 걸쳐 우리는 아브라함의 텐트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따라왔습니다. 사라와 하갈이라는 두 여인에게서 이삭과 이스마엘이 태어났고, 그 두 아들의 후손들이 수백 년에 걸쳐 얽히고 충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마엘의 열두 지파, 에서의 후손 아말렉, 미디안 상인들과 요셉의 만남, 기드온과 미디안의 전쟁까지. 그런데 오늘 우리는 시간 축을 크게 도약시켜야 합니다. 기드온 이후로도 수백 년이 더 흘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사울이 왕이 되었고,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고, 그 아들 솔로몬 때에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이 황금기에 의미심장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성경은 그 만남을 열왕기상 10장에 짤막하게 기록하지만, 이 만남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두 문명이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앉은 순간이었습니다. 갈등이 아니라, 경외와 교류로.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시바 여왕이 왔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시바를 현재 에티오피아와 예멘 사이 어딘가로 봅니다. 아라비아 반도 남쪽 끝, 아프리카의 뿔과 맞닿은 그 땅에서 여왕이 직접 예루살렘까지 올라온 겁니다. 낙타와 향료와 금으로 가득 찬 대규모 행렬을 이끌고요. 단순한 외교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를 직접 시험해 보려 했습니다. 열왕기상 10장 1절은 그녀가 온 이유를 이렇게 씁니다. '시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솔로몬의 명성 때문이 아니었어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였습니다. 이방 여왕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름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녀는 솔로몬에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마음에 품어왔던 것들을 모두 물어봤습니다. 솔로몬은 그녀의 질문에 하나도 숨김없이 대답했습니다. 성경은 시바 여왕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내게 고한 것은 절반도 못 되었도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멈춰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시바 여왕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직계 후손도 아닙니다. 아라비아 남쪽 끝에서 온 이방인 여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솔로몬을 칭찬하셨고, 솔로몬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었습니다. 이 만남은 갈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흘러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만남은 이방인과의 상생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해 서로 다른 문명이 이렇게 앉아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하지만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왕국은 둘로 갈라졌습니다. 북쪽의 이스라엘, 남쪽의 유다. 두 왕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각자 다른 시기에 무너졌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여 흩어졌습니다. 남 유다는 조금 더 버텼지만, 기원전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솔로몬이 40년 공들여 지은 성전이 불탔습니다. 그 화려했던 금 촛대와 계약궤, 백향목 기둥들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백성은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시바 여왕이 경탄했던 그 도시가 폐허로 변한 겁니다. 바벨론은 지금의 이라크 땅에 있던 제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마르둑 신상이 서 있는 도시에서 포로로 살게 된 겁니다. 이 시기에 시편 137편이 씌어졌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절망의 시간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동쪽에서, 전혀 다른 제국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기원전 550년경,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이란 땅입니다. 고레스라는 왕이 일어나 메디아를 정복하고, 리디아를 정복하고, 마침내 바벨론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 바벨론 제국이 단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습니다. 다니엘서에는 벨사살 왕이 잔치를 베풀다 벽에 쓰인 글자를 보고 공포에 떨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날 밤, 고레스의 군대가 바벨론을 점령했습니다. 그 다음 해, 고레스는 놀라운 칙령을 내렸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들,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 성전을 다시 짓고 싶으면 나라가 지원해주겠다. 에스라서 1장에 그 칙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사야서입니다. 이 장면이 일어나기 약 150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이 왕의 이름을 이미 불렀습니다. '고레스'. 이름을 미리 부른 겁니다. 그리고 이사야 45장 1절은 이렇게 씁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자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기름 받은 자.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이방인 왕 고레스를 하나님이 그 단어로 부르신 겁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유대인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왕의 마음을 움직이실 수 있고, 이방 제국을 도구로 삼으실 수 있습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아셨고, 그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대신해 싸워주고, 포로를 해방시켜 준 이방인 왕. 그가 '기름 받은 자'라 불린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쓰였기 때문입니다.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이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 바벨론으로 끌려와 궁정 관리로 훈련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켰습니다. 어느 날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꿨습니다.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이 불려왔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거대한 신상 하나가 서 있는데, 머리는 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다리는 철이고 발은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뜨이지 않은 돌 하나가 날아와 그 신상을 무너뜨리고, 그 돌이 큰 산이 되어 온 세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다니엘은 이것이 세계 제국들의 흥망을 상징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금은 바벨론, 은은 그 다음에 올 페르시아, 놋은 그리스, 철은 로마.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뜨이지 않은 돌은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세우실 나라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이 환상이 놀라운 이유가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은 제국들의 끝이었습니다. 바벨론도 끝나고, 페르시아도 끝나고, 그리스도 끝나고, 로마도 끝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끝나지 않는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환상이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은 고레스의 페르시아에 멸망했습니다. 페르시아는 알렉산드로스의 그리스에 무너졌습니다. 그리스 제국은 로마에 흡수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제국 치하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알렉산드로스가 세상을 바꿨습니다. 기원전 333년, 스물두 살의 마케도니아 왕은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이집트를 정복하고 인도 입구까지 진군했습니다. 그가 지나간 땅에 그리스 문화가 씨처럼 심겼습니다. 도서관이 세워지고, 철학이 퍼지고,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헬레니즘이라 부릅니다. 유대 땅도 그 물결 안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그리스식 체육관이 들어서고, 유대 젊은이들이 그리스어를 배웠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였고, 어떤 이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마카비 혁명이 그 저항의 불꽃이었습니다. 하누카 축제는 그 기억을 오늘까지 이어갑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제국은 분열되었지만, 그리스어는 살아남았습니다. 그 그리스어로 구약 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70인역이라고 불리는 그 번역본 덕분에, 유대 땅 바깥의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제국의 언어를 복음의 도구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로마가 왔습니다. 철의 제국. 로마는 도로를 놓았습니다. 제국 전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도로 위로 나중에 사도들이 걸어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그 시대에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다니엘의 환상이 하나씩 실현되는 것을 역사가 보여줍니다. 금, 은, 놋, 철로 표현된 제국들이 차례로 흥망했고,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시간표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600년이 흘렀습니다. 7세기 초,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무함마드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상인이었고, 명상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610년경 메카 근처 히라 동굴에서 첫 번째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하나님은 오직 하나뿐이며 자신이 그 마지막 선지자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슬람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의 또 다른 아들의 계보를 잇는다는 주장입니다. 기독교 입장에서 이 계보를 성경적으로 검증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이 중동 역사에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던 하나님의 약속, 그 후손들이 하나의 거대한 문명권을 형성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무함마드의 가르침은 빠르게 퍼졌습니다. 그가 죽은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아,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 전체, 페르시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스페인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638년, 칼리프 우마르가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했습니다. 이슬람 군대가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때, 총대주교 소프로니우스는 항복 협정을 맺었습니다. 우마르는 성전산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그 자리가 나중에 바위의 돔이 세워지는 곳입니다. 이스마엘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민족이, 이삭의 후손들이 세운 도시의 중심을 차지한 겁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천 년을 돌고 돌아 다시 한 도시 앞에 섰습니다.

두 문명의 교차 — 솔로몬의 교역에서 이슬람의 등장까지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물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가? 성경은 이 질문에 놀랍도록 명확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땅입니다. 어떤 제국이 점령하든, 어떤 민족이 그 위에 깃발을 꽂든, 하나님이 당신의 땅이라 부르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이 점령했을 때도, 그리스가 성전을 더럽혔을 때도, 로마가 또다시 성전을 불태웠을 때도, 그리고 이슬람이 그 자리에 돔을 세웠을 때도. 하나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오랜 역사 전체를 돌아보면 한 가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안에만 갇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시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 때문에 솔로몬을 찾아왔을 때,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두 문명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이방 왕 고레스가 유대인을 해방시켰을 때, 하나님은 이방 제국의 왕을 당신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그리스어가 복음의 언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방 문화를 당신의 메시지를 담는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무함마드와 이슬람의 등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오늘날에도 예민한 질문입니다. 성경은 약속의 자녀가 이삭의 계보,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동시에 이스마엘의 후손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는 것, 하나님이 그 어떤 민족도 당신의 사랑 밖에 두지 않으신다는 것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두 문명이 천 년 넘게 예루살렘 하나를 두고 다퉈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도시 위에 하나님의 시선은 한 번도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그 땅에서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유대인도 아랍인도 팔레스타인인도, 하나님은 그 모두를 보고 계십니다.

묵상

솔로몬의 황금기에서 이슬람의 예루살렘 입성까지, 오늘 우리가 따라온 이 긴 여정에서 무엇이 보이셨나요.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고레스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을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이방 왕,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왕, 그를 하나님이 '기름 받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왜요?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누구든 쓰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모르는 사람도. 시바 여왕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아라비아 남쪽 끝에서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을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해 솔로몬을 찾아왔고, 그 만남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그 만남을 성경에 기록으로 남기셨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다니엘의 환상은 우리에게 역사를 보는 눈을 줍니다. 눈앞에 있는 강대국이 전부처럼 보일 때, 그 나라도 결국 지나간다는 것. 금도, 은도, 놋도, 철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손으로 뜨이지 않은 돌처럼, 지금도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대국들이 다투고, 종교들이 충돌하고, 예루살렘은 여전히 갈등의 중심에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포로 생활 중에 보았던 것처럼, 역사의 주인은 제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는 긴 역사의 강을 함께 걸었습니다. 솔로몬의 영광에서, 바벨론의 포로를 거쳐, 이슬람의 예루살렘 입성까지. 그 모든 역사의 한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음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혼란스럽습니다. 어느 나라가 옳은지, 어느 종교가 맞는지, 예루살렘은 누구의 땅인지,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넘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하게 해주세요. 역사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 시절에 그것을 알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의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신뢰하게 해주세요. 예루살렘에서 오늘도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 유대인도, 아랍인도, 팔레스타인 사람도,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주시고, 그 땅에 진정한 평화가 오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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